함께해 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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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캠코 문학방에서는 명작 속에 녹아 있는 시대와 이를 통한 경제 개념을 소개합니다. 일본의 대문호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에 녹아있는 공공재의 민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글.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

철도원은 기차의 출발과 도착을 지시하고 역사의 사무를 맡아보았다.


“철도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 대신 호루라기를 불고, 주먹 대신 깃발을 흔들고, 큰 소리를 내지르는 대신 호령을 뽑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 떠나가는 기차를 향해 수신호를 보내는 한 남자가 있다. 평생을 묵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 바위 같은 그다. 하지만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그에게 마지막 기적이 찾아온다. 아사다 지로는 단편소설 <철도원>에서 묻는다. ‘너무나 그리운 사람은 삶의 끝에서라도 다시 만나게 될까’라고.

아사다 지로는 경력이 좀 특이하다. 그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20대를 야쿠자로 보냈다. 우연히 한 문장을 접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최고 소설가 중 한 명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문장이었다. 그는 마흔살에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마흔여섯이 되는 해에 <철도원>을 집필했다. <철도원>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삶의 경험과 무게는 다 이유가 있다. 1997년 출간된 <철도원>은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영화로도 제작됐다.

주민들의 삶과 함께한 기차역
소설 <철도원>의 실제 배경이 된 일본 훗카이도의 이쿠도라 역.


17년 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태어난 지 두달째인 딸 유키코가 감기에 걸려 죽는다. 호로마이역 역장인 오토마츠는 딸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한다. 그날도 철도원 오토마츠는 철도역을 지켜야 했다. 그는 아픈 딸을 안은 아내가 탄 기차를 수신호로 떠나보냈다. 그날 밤 유키코는 모포에 말려 차디찬 몸이 되어서 돌아왔다. 병원 하나 없는 마을에서 태어나 문풍지 바람이 끊일 새 없었던 사무실 겸 살림방의 추위를 어린 것은 견디지 못했다. 오토마츠는 딸에 대한 죄책감에 평생 시달린다. 딸의 일곱번째 생일 전날 저녁, 한 여자아이가 셀룰로이드 큐피 인형을 역 대합실에 두고 간다. 키가 요만하고 아주 예쁘장한, 빨간 가방을 맨 아이였다. 벽시계가 밤 열두시를 가리키자, 빨간 머플러를 두른 또 다른 여자아이가 매표구 앞에 나타난다. 전날 저녁에 본 아이보다 키는 조금 크지만 외꺼풀의 눈매가 꼭 닮은 아이였다. 열두살이라고 밝힌 이 아이는 곧 중학교에 들어간단다. 다음날 오후 갈래머리의 여고생이 역에 나타난다. 청색의 하얀 리본이 달린 세일러복을 입은 이 여고생은 오토마츠를 위해 밥을 짓는다.

그날 밤 호로마이에는 시간도 장소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큰 눈이 내린다. 호로마이는 메이지 시대부터 홋카이도 제일의 탄광촌이었다. 호로마이역도 증기기관차가 석탄을 가득 싣고 쉴새 없이 왕복하는 위세당당한 역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탄광이 폐쇄한지 벌써 10년째다. 이제는 100여 가구만 사는 초라한 산골이 됐다. 호로마이역에는 아침과 저녁, 고등학교 등하교 전용 단행기차만 오간다. 한량짜리 ‘기하12형’ 기차다. 1952년에 제작된 낡은 기차로 거의 문화재급이다.

오토마츠는 마음이 허하다. 2년전 아내가 죽으면서 홀로됐다. 45년을 근속한 뒤 이제 정년을 앞두고 있다. 석달 뒤면 호로마이선도 폐선된다. 호로마이선이 폐선되는 이유는 적자 때문이다. 일본 국철이 분할 민영화되면서 호로마이선은 ‘홋카이도 여객철도’로 넘어갔다. 홋카이도 철도는 더는 적자를 견딜 수 없었다. 젊은 기관사는 말한다. “호로마이선이 언제 수송 밀도니 뭐니 따져가면서 운행했나요. 고등학교 방학 때는 항상 이랬잖아요. 근데 이제 와서 왜 새삼스럽게 노선을 폐지한다고 하느냐고요” 베테랑 철도원이자 비요로 역장인 센지가 답한다. “난들 알겠나. 지금까지 버틴 것만해도 과거의 실적을 크게 쳐준 것이겠지”

공공재 민영화의 두 얼굴
산골마을에 기차는 주민들의 이동을 돕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폐선이 되면 주민들의 불편이 커진다. 때문에 국영철도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서라도 이 노선을 유지한다. 하지만 민간철도는 다르다. 적자를 보면서까지 노선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영철도는 국영철도처럼 공공성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돈이 되는 노선은 집중투자를 해 많은 수익을 걷어간다.

주인이 없는 공유자원 혹은 공공재는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공유자원이 황폐해질 수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는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을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한다.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제안된 개념이다. 이를 막기 위해 시도되는 것이 민영화 혹은 사유화다. 민간이 공유자원을 소유하도록 하면 책임감있게 운영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민영화·사유화도 약점이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공공자산인 물, 전기, 수도, 공공교통 등은 엄청난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재화들이다. 소비를 안하고는 버틸 수 없는 필수재인데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SOC가 많아 신규사업자가 진입하기 힘들다. 충분한 대가를 받지 않고 특정인에 넘겨준다면 인수자는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많은 이권이 붙을 수록 검은 거래가 이뤄지기 쉽다. 검은 거래에는 뒷돈이 오가고, 그 돈은 비자금이 된다. 검은 돈을 준 만큼 물, 전기, 수도, 공공교통비는 올려야 한다. 사유화를 시켰더니 사회적으로 도리어 고통이 커지는 상황을 ‘사유화의 비극’이라고 한다. 개발도상국일수록 사유화의 비극이 심하다.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는 공공재의 민영화는 부당 거래가 이루어지기 쉽다.
캠코의 온비드 공개입찰로 투명하게
사유화의 비극을 피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가 공공자산을 매각할 때 ‘제값’을 받고 ‘투명’하게 파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이 같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한국에서는 캠코가 이 역할을 한다. 캠코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13조원이 넘는 국공유재산을 매각해, 국고로 납입했다. 국유재산관리는 온라인입찰서비스인 ‘온비드’를 통해 공개적으로 이뤄진다. 온비드에는 어떤 로비도, 권력도, 이권도 개입되기 힘들다. 공공자산 매각 때 더 이상 특혜시비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철도원 오토마츠 앞에 나타난 세 명의 여자아이는 17년전 죽은 딸, 유키코의 유령이었다. 유키코가 살았다면, 그렇게 차례차례 컸을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준 것이다. 오토마츠는 딸과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보낸다. 다음날 오토마츠는 플랫폼의 홈끝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평생을 함께 했던 아내는 죽고, 인생을 바쳤던 철도원은 정년퇴직을 맞고, 평생을 몰았던 호로마이선은 폐선 당하는 상황에서 오토마츠는 삶의 더 이어갈 의미를 찾지 못했을지 모른다.

만약 일본 국철이 호로마이선을 떼내 관광열차를 운행할 사업자에게 분할매각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탄광촌인 호로마이는 산세가 좋아 관광으로는 경쟁력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라면 그 역할을 캠코가 맡았을 가능성이 크다. 철도운행권, 철도차량 등의 가치를 꼼꼼히 따져 온비드를 통해 민간사업자에게 입찰을 붙였을 것이다. 호로마이선이 관광열차선으로 부활하고 오토마츠가 호로마이역의 역장으로 돌아온다면 <철도원>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재밌는 상상이다.

캠코의 온비드 공개입찰은 공공자산 매각 과정을 투명화했다.
철도원의 흔적을 찾으려면
영화 <철도원>의 촬영지인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 위치한 이쿠도라역.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이 찍은 영화 <철도원>의 배경은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에 위치한 이쿠도라역이다. 소설 속 묘사처럼 정말 눈이 많이 오는 시골 간이역으로 지금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실제 지명은 이쿠도라역이지만 ‘호로마이역(Horomai Station)’이라는 역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다. 역 내부에는 오토마츠 역장의 집무실겸 대합실 등 영화속 세트가 그대로 남겨져 있다. 조그만 TV 화면에는 영화 <철도원>이 상영되고 있고, 영화의 OST를 틀어놔 작품의 흔적을 좇아 온 관광객들을 반긴다. 역 밖에도 소설 속 이발소, 식당, 화장실 등 세트가 잘 보존돼 있어 볼거리로 좋다. 해발 2000m급 다이세쓰산을 끼고 있는 이쿠도라는 일본 TV와 영화, 광고의 단골 배경지다.

글.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
경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기 위해 영화, 문학, 대중문화와 경제학을 접목하는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저서로 <경제학자의 문학살롱>, <영화 속 경제학>, <아이언맨 수트는 얼마에 살 수 있을까?>, <경제를 모르는 그대에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