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생명체는 영화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의 생명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는 없다.
‘만물의 영장’ 인류는 엄청난 영향력을 태양계 곳곳에서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도 처음에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개와 고양이의 도움으로 오늘날의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침팬지의 유전자는 인류와 98.77%나 일치한다. 까다로운 식성의 침팬지는 부드러운 잎이나 과일을 즐긴다. 하지만 소, 양 같은 위(胃)가 여럿인 반추동물들은 거친 풀도 마다하지 않는다. 위가 하나인 침팬지가 그러면 소화불량을 면치 못한다. 침팬지는 초식동물처럼 식물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곤충은 물론 콜로부스 원숭이(Colobus)나 새끼 영양까지도 사냥한다. 인류도 비슷하다. 곡물이나 채소 등이 주식이지만, 적정한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해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은 지혜롭다. 그래서 변화에 빠르다. 얼음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대에는 수집과 채집으로 연명했지만, 빙하기가 끝나자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농부가 되었다. 농업으로 안정적 곡물 생산이 가능해지며 인류는 배고픔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경작으로는 필요한 영양을 온전히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류는 가축이라는 창의적 발명품을 만든다. 울타리를 치며 사냥감을 키운다. 축산업은 이렇게 경종과 함께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가능케 한다.
몇만 년 전, 인류는 지배적 존재와 거리가 멀었다. 현대인은 비만을 걱정하지만,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는 굶주림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개의 합류로 변화가 생긴다. 늑대의 후손 개는 수 킬로미터 밖의 사냥감을 후각으로 탐지한다. 그리고 체력과 끈질김으로 추격한다. 개의 친척인 리카온(lycaon)은 사냥감을 수십 킬로미터까지 추격한다. 사냥 대상이 되면 더는 숨이 차서 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사냥개에게 쫓기는 동물의 신세도 그렇다.
개는 산책만 나가면 땅에 코를 박고 킁킁거린다. 주인 눈에는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개의 그런 습성 탓에 구석기 인류는 땅속 동물을 사냥할 수 있게 된다. 능력 있는 사냥꾼 개와 깐부가 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농경을 하며 신석기 인류는 주변 초지에서 가축을 키웠다. 방목을 위해서는 맹수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 발명품은 목양견이었다. 포식자인 개를 가축을 지키는 수호자로 변신시킨 것이다. 맹수를 막고 가축을 통제하는 목양견은 인류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영장류는 야간시력이 취약하다. 원숭이는 주간에는 표범의 공격에 당하지 않지만, 밤에는 그렇지 않다. 야간시력이 좋은 표범은 밤에 나무 위에서 자는 원숭이를 손쉽게 사냥한다. 하지만 인류는 개의 도움으로 그런 공포에서 벗어난다. 개는 밤에 맹수나 침입자가 침범하면, 바람을 타고 풍기는 냄새를 알아차리고 마구 짖어 위험을 알렸다. 그러므로 개가 낮에 자도 깨워서는 안 된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후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호랑이나 사자 혹은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늑대가 아니었다. 곡식을 축내고 갖은 질병의 매개체가 되는 ‘쥐’였다. 쥐의 무서움은 ‘왕성함’에 있다. 한 쌍의 쥐는 일 년 안에 자식, 손자 등 2,000마리까지 불어난다. 분변에는 전염병을 전파하는 무서운 원인 물질들이 가득하다. 쥐는 죽을 때까지 자라는 앞니 때문에 닥치는 대로 주변 물건을 갉는다. 집에 있는 목조는 물론 전선도 끊어 놓는다.
고양이는 밤의 제왕인 올빼미에 버금갈 정도로 청각이 뛰어나다. 쥐가 내는 특유의 찍찍거리는 소리에 민감하다. 배고픈 고양이에게 그 소리는 식사시간 종소리다. 리비아 초원이 고향인 고양이는 이집트에서 가축화되었다. 현재 이집트는 건조하지만, 로마제국 당시 이집트는 서반구의 곡창이었다. 로마인들은 이집트 밀로 끼니를 때웠다. 곡식 창고는 쥐의 코를 자극했고, 쥐가 내는 소리는 고양이의 귀를 유혹했다. 인간 세상에 온 고양이는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늘 가는 곳에 실이 갔고, 그곳에서 정착했다.
개와 고양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잘한다. 후각이 예민한 늑대가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체력 덕분이다. 개는 생물학적으로 늑대와 차이가 없다. 그래서 혈기왕성한 개는 주인에게 실컷 놀아달라고 재촉한다. 끊임없이 주인에게 공놀이나 산책을 요구하는 것은 정상적이다. 개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인류에게 공헌한 것이다.
현대 고양이는 인간의 집에서 살지만, 원래 고양이는 초원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살았다. 고양이는 개에 비해 인류와의 공존 역사도 짧아서인지 여전히 야생의 습관이 많이 남아있다. 고양이는 주인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무방비 상태의 주인을 향해 와락 공격하는 장난이 일상이다. 그런데 주인을 혼비백산하게 하는 놀이에는 고양이의 성공 비결이 숨어있다. 고양이는 체력으로 승부하는 개와는 다르다. 잠복형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쉼 없이 위협하는 쥐의 개체 수를 그런 식으로 제어해왔다. 그러니 고양이의 장난에 지나치게 예민해서는 안 된다. 평소 연습을 해야 유사시에 사용할 수 있다.
수만 년 전, 인류는 개와 고양이를 받아들였다. 그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두 동물에게 준다. 야생동물의 삶 대신 인류의 동반자인 반려동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도 큰 변화를 겪었다. 개와 고양이의 노력으로 충분한 동물성 단백질과 곡류를 획득하게 되었고, 그것을 밑천으로 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친구 둘을 얻게 된 것이다. 개와 고양이는 ‘신의 선물’이며 선조가 남긴 ‘소중한 유산’이다.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는 건국대학교 축산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과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경영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동물과 인류에 관한 다양한 기고와 강의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저서로는 「사람과 개가 함께 나눈 시간들」, 「개들이 있는 세계사 풍경」, 「동물 인문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