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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가?

개인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가?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정재찬 교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너무 과속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너무 나태에 빠진건 아닌가...’

수많은 위기 속 우리가 마주한 인생에 대해 아름다운 시의 언어로 소개하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정재찬 교수. 지금부터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수많은 위기 속 우리가 마주한 인생에 대해 아름다운 시의 언어로 소개하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정재찬 교수. 지금부터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Q1
안녕하세요, 교수님. 귀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캠코 웹진 구독자 분들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있는 정재찬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뭐 평생 교단에만 있었는데 최근에 글 좀 썼더니 ‘작가’로 라고 좀 불리긴해요.《시를잊은 그대에게》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등의 시를 갖고 인생이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Q2
혹시,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에 대해서 알고 계셨을까요? 아신다면 어떻게 생각을 하셨을까요?

캠코 혹은 자산관리공사. 이런 말을 들었던 때가 주로 1997년 외환위기나 아니면 2002년 카드대란 때 들어봤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위기’에 정말 필요한 곳이라 그럴까? 왜 서양 속담에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정말 필요할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그게 결국은 지금 정말 자산관리공사가 또 한번 그 면모를 우리 앞에서, 바로 펜데믹 시대에 우리를 도와줘야 할 ‘친구’가 아닐까 그런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Q3
예기치 못한 상황의 연속입니다. 특히 코로나19의 발생과 장기화로 인해 우리는 어떤 위기와 변화를 겪고 있을까요?

저한테 코로나 시대는 아이러니와 역설의 시대라고 생각이 들어요. 가장 이 하찮은 바이러스가 가장 위대한 인류의 문명을 멈추게 한 것, 이것부터가 아이러니고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과연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과연 정말 선진국이 저래도 좋은가? 하는 반성도 제기하면서 진정한 성장이나 발전이란 도대체 뭔가? 이런 질문들을 좀 던져준 것 같습니다. 선진국이 처음에는 막 무너지는 것 같았다가요 ‘역시 기초과학이 튼튼한 나라가 선진국이구나’ 이런 생각들이 좀 들게 해주고, 또 그렇게 본다면 어떤 인문학을 비롯해서 이런 기초과학이 잘 서 있는 나라가 그게 진장한 선진국이고 그로부터 이제 진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거든요? 우리가 펜데믹 때문에 참 많이 힘들어하고 그런 건 사실인데 솔직히 말하면 ‘어머 하늘이 저렇게 맑았었어?’, ‘미세먼지가 원래 없는 게 정상이었어?’ 하는 거를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멈추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우리가 발견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본다면 아, 이게 위기긴 위기고 정말 힘든 시기인 건 맞는데 이때 우린 정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우리의 근본은 뭐냐’ 하는 걸 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이 많은 사회 시스템도 있지만 이제 비로소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들이 노력해야 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Q4
그럼 교수님. 인문학이 왜 필요하며, 교수님께서 왜 인문학을 공부하시는 걸까요?

‘왜 문학을 하냐?’ 전 늘 이렇게 답합니다. “그냥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요” 제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이럴 자신은 없는데 좀 평생 살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없을까?’ 그러기에 저는 좋은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했던 것 뿐이에요. 오늘 영어를 많이 쓰게 되네요? 하하. ‘The Best for a Better World’라는 말이 있는데,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가 그렇게 완벽한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회,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 아닐까? 근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 조금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best를 다 해야 해요. 아니 이걸 조금 더 다르게 생각해보면 best를 해도 고작 조금 나아져요. 근데 그렇게 인류가 조금씩 조금씩 최선을 다해서 지금 이러한 문명을 만들었거든요. 그럼 이 시점에서 다시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면 이제 남은 과제는 뭘까, 그동안 우린 그냥 달려만 왔는데 이제 조금 멈추고 진정한 성장이 뭔지, 발전이 뭔지 돌이켜 봐야 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Q5
엔데믹 시대를 앞둔 현재, 우리 사회의 석학으로서 가장 걱정되는 현안은 무엇일까요? 그 극복방법은 무엇일까요?

아까 제가 아이러니의 시대라고 그랬는데 사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워 왔잖아요. 그런데 사회적인 거리를 두라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거는 앞, 뒤가 안 맞는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펜데믹 시대가 오니까 뭉쳐도 죽고 흩어져도 죽는 거예요. 뭉치면 전염병이 도져서 죽고 흩어지면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죽어. 근데 그걸 좀 긍정적으로 다르게 생각을 바꿔보면요. 우린 뭉쳐도 살고 흩어져도 살 수 있는 지혜를 이번 기회에 얻은 게 아닐까. 그니까 이런 것을 극복하려면 자본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 라고 하는 그 인식이 필요한 것 같고요.

Q6
인식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페스트가 돌자 다들 흩어져 도망을 갔는데 의사 리외만 남아서 환자들을 열심히 치료해요. 그러자 랑베르란 기자가 묻습니다. ‘여기 왜 계세요?’ 그러자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비웃으시겠지만 이러한 전염병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얘길해요. ‘성실성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그러자 리외는 다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아는 한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게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 말처럼 들립니다. 세상을 이기려면 성실해야 돼. 성실하다는 것은 맡은 바의 직분을 완수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저는 리외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 준거 같아요. ‘내가 여기 왜 남아 있냐고?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해서? 영웅이라서? 그게 아냐. 내 맡은 직분이 뭐냐면 의사야.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주는 것이 업의 본질이야. ‘그거를 내가 완수하기 위해서 나는 떠날 수가 없어.’ 그래서 저는 이 시대를 극복하는 방법은 저도 《페스트》처럼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 성실합시다.’ 그러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가져 봅니다.

Q7
말씀 감사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배움, 사랑, 소유 등 누구나 마주하는 인생의 주제들을 섬세한 시의 언어로 전달하십니다. 오늘 캠코 웹진 구독자분들에게는 들려주실 시가 있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은 주로 우리가 사회, 국가, 인류, 지구 뭐 이런 차원에서만 많이들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근데 한번 저는 생각을 바꿔봤어요. ‘우리 개인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면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될 건 뭘까’ 하고 봤더니 정말 제가 보기에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제일 잘하는 친구들은 저는 나무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문정희 시인이 쓴 《나무 학교》라고 하는 시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볼게요.

나무학교 문정희
나무학교 문정희

‘내년에는 나는 더욱더 울창해지기로 했다’ 이게 저는 포인트 같아요. 내가 계속 나이 들어가는 것이 어쩌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고있는 건데 과연 내가 어느날 나무처럼, 나무 학교 출신인 것처럼 ‘나 꽤 멋있게 성숙했지. 나 정말 잘 성장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게 개인으로 보면 정말 진정한 나이 듦. 지속 가능한 성장 아닐까. 그래서 너무 과속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한번 돌이켜도 보고요. 내가 너무 그냥 나태에 빠진 것 아냐 반성도 해 보고요. 그러면서 서서히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것, 그게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나무 학교》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Q8
코로나19 시국을 겪으며 불확신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욱 커졌습니다. 오래도록 우리를 괴롭힐 것만 같은 이 고민들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이제 길이 열렸어. 안심해’ 이런 말은 못 해주겠어요. 저는 백신을 만들지도 못하고요. 경제정책을 입안하지도 못해요. 근데 경험으론 알고 있어요. 우리가 흔히 이 또한 넘어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그 말이 꼭 공경에만 해당 되는 건 아니거든요. 영광의 순간도 이 또한 지나가는 거예요. 지금 불안해하고 내가 지금 어둡다면 그거는 내 안의 뭔가 빛을 잃어버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빛을 회복하느냐고 이것이 정답이 될 거야. 이걸 내가 정답으로 만들고 말 거야. 인생 별거 있어? 내가 선택한 걸 정답으로 만들면 되는 거지. 라는 자세가 지금 이 어두운 시대에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Q9
마지막으로 캠코 웹진 구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아까 제가 캠코에 대해서 특별히 말씀드렸던 것이 아 정말 위기에 빠졌을 때 진가를 발휘했던 곳 아니냐? 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예를 들어 아플 때 누가 나를 좀 도와줘야 하잖아요. 어젯밤에 집사람이 갑자기 급체가 일어났어요. 그럼 어떡하겠어요? 남편이 등장해야죠. 그래서 이렇게 배를 쓸어주고 했는데 제가 아픈 기억을 떠올려 보니까 이마는 내가 내 손으로 덮는 게 아니에요. 이마는 역시 할머니가 덮어줘야 하고 엄마가 덮어줘야 해요. 그래야 나랑 체온이 다른 사람이 덮어줘야 내 체온도 잴 수 있고 내 이마도 시원해지는 법 아닙니까? 어쩌면 내가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나 혼자 내 이마를 덮을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내 이마를 덮어주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이 펜데믹 시대에 각자 살고 함께 사는 것. 그거는 내게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할 때 그게 남을 도와주는 일이 될 수 있는 것. 그런 관계의 회복이라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