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에는 시대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모비딕>을 읽으며 당시의 선박금융, 그리고 캠코선박펀드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봅니다.
글.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
넷플릭스의 SF 영화
<로스트 인 스페이스(lost in space)>의 도입부. 지구를 떠나 우주 이주지로 가던 로빈슨 가족이 뜻밖의 사고로 한 행성에 불시착한다. 얼어버린 호수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 첫째 딸 주디가 얼음을 깨며 자신을 구조하려는 동생 페니에게 묻는다.
"전화기에 책 저장해뒀지? 읽을 만한 책 있어?"
"인류의 지혜가 담긴 책을 전자책으로 가져왔어. 역대 최고의 작품을 선정해 저장해놨지. 디킨스 전집, 세익스피어 전집…."
"죽기 전에 <모비딕>은 꼭 읽어보라던데… 모비딕 있어?
"당연히 있지."
"읽어줘."
동생 페니가 <모비딕>을 읽어준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Call me Ishmael)."
"전화기에 책 저장해뒀지? 읽을 만한 책 있어?"
"인류의 지혜가 담긴 책을 전자책으로 가져왔어. 역대 최고의 작품을 선정해 저장해놨지. 디킨스 전집, 세익스피어 전집…."
"죽기 전에 <모비딕>은 꼭 읽어보라던데… 모비딕 있어?
"당연히 있지."
"읽어줘."
동생 페니가 <모비딕>을 읽어준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Call me Ishmael)."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콜 미 이슈메일(Call me Ishmael)’.
700여 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인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세 단어가 만든 한 문장은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이라 불린다. 영문학에서 모비딕의 위상은 엄청나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불린다. 주디가 셰익스피어전집 대신 <모비딕>을 읽어달라고 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모비딕>은 멜빌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1851년 출간됐다. 하지만 출간 이후 한참이 지나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멜빌 사망 30년이 지난 1920년대 영문학자들이 그를 재평가했다. 지금은 미국이 낳은 19세기 최고의 작가로 대접받는다.
<모비딕>은 생각보다 읽기 쉽지 않다. 곳곳에 비유와 상징이 담겨있고, 읽을 만하면 포경업과 고래에 대한 각종 서술이 가로막아 읽기가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고래의 생태학적, 해부학적, 포경학적, 역사적, 신화적 기술이 방대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비딕>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영국 도서관에서는 문학이 아닌 고래학으로 분류된 서가에 꽂혀 있었다.
‘콜 미 이슈메일(Call me Ishmael)’.
700여 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인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세 단어가 만든 한 문장은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이라 불린다. 영문학에서 모비딕의 위상은 엄청나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불린다. 주디가 셰익스피어전집 대신 <모비딕>을 읽어달라고 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모비딕>은 멜빌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1851년 출간됐다. 하지만 출간 이후 한참이 지나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멜빌 사망 30년이 지난 1920년대 영문학자들이 그를 재평가했다. 지금은 미국이 낳은 19세기 최고의 작가로 대접받는다.
<모비딕>은 생각보다 읽기 쉽지 않다. 곳곳에 비유와 상징이 담겨있고, 읽을 만하면 포경업과 고래에 대한 각종 서술이 가로막아 읽기가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고래의 생태학적, 해부학적, 포경학적, 역사적, 신화적 기술이 방대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비딕>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영국 도서관에서는 문학이 아닌 고래학으로 분류된 서가에 꽂혀 있었다.
인간과 고래 사이의 대서사시
이슈메일은 바다로 나가고 싶은 충동에 고래잡이배를 탄다. 미국 포경업의 중심지인 낸터킷으로 가는 길에서 작살잡이 퀴퀘그를 만나 피쿼드호에 승선한다. 피쿼드호의 선장은 에이해브 선장. 그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40년 인생을 고래를 쫓는 데 썼다. 그는 한쪽 발이 없다. 지난 항해에서 향유고래 모비딕을 쫓다가 다리를 잃어버렸다. 에이해브 선장은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모비딕에 대한 복수심에 빠져있다. 선장은 주돛대에 금화를 박는다. 모비딕을 가장 먼저 발견한 선원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놈을 잡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대륙의 양쪽에서, 지구 곳곳에서 그놈의 흰 고래를 추적하는 것, 그놈이 검은 피를 내뿜고 지느러미를 맥없이 늘어뜨릴 때까지 추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항해하는 목적이다.”
하지만 모비딕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피쿼드호는 인도양을 지나 말레이반도를 거쳐 일본연해로 향하며 망망대해를 누볐다. 피쿼드호는 이제 적도로 향한다. 조바심이 난 에이해브 선장은 직접 망대에 올라 모비딕을 찾는다. 에이해브 선장은 모디딕에 사적인 감정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게 다 일까? 모비딕은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그놈을 잡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대륙의 양쪽에서, 지구 곳곳에서 그놈의 흰 고래를 추적하는 것, 그놈이 검은 피를 내뿜고 지느러미를 맥없이 늘어뜨릴 때까지 추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항해하는 목적이다.”
하지만 모비딕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피쿼드호는 인도양을 지나 말레이반도를 거쳐 일본연해로 향하며 망망대해를 누볐다. 피쿼드호는 이제 적도로 향한다. 조바심이 난 에이해브 선장은 직접 망대에 올라 모비딕을 찾는다. 에이해브 선장은 모디딕에 사적인 감정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게 다 일까? 모비딕은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주식과 채권은 대항해시대 탄생한 유물
포경산업은 19세기 거대 산업 중 하나였다. 석유가 없던 시절, 고래는 석유를 대신하는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고래를 짜내 만든 기름은 가로등과 램프 기름으로 쓰이며 도심의 밤을 밝혔다. 그중에서도 향유고래는 단연 인기였다. 한 마리에도 많은 기름이 나오는 데다 기름은 향이나 화장품 재료로도 쓰였다.
미국 포경산업의 중심은 매사추세츠주였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곳에 낸터킷 섬이 있다. 포경업이 전성기를 이루던 그 시절, 미국의 포경선은 700척이 넘었고, 포경선을 타는 사람은 1만 8000명에 달했다. 포경산업은 해마다 400만 달러를 소비했다. 출항할 때 2000만 달러의 가치를 갖는 배가 해마다 700만 달러의 수익을 가지고 돌아왔다. 포경선은 귀향까지 길면 3년씩이나 걸렸다.
이렇게 거대한 산업에는 많은 사람의 투자가 필요하다. 피쿼드호도 직접 투자를 한 사람을 비롯 연금생활을 하는 사람들, 고래잡이 남편을 잃은 과부들,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미성년자로 법원의 보호를 받는 피후견인 등이 지분을 나눠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수익을 주는 국채에 투자하듯 낸터킷 사람들은 포경선에 투자했다.
비단 포경산업 뿐 아니다. 앞선 대항해시대 향신료와 금은을 얻기 위해 떠나는 선박들은 대형 투자가 필요했다. 공적기관은 없었다. 온전히 민간에서 투자금을 모아야 했다. 투자를 한 대가로 주식과 채권이 발행됐다. 그러니까 주식과 채권은 대항해시대 탄생한 유물이다.
미국 포경산업의 중심은 매사추세츠주였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곳에 낸터킷 섬이 있다. 포경업이 전성기를 이루던 그 시절, 미국의 포경선은 700척이 넘었고, 포경선을 타는 사람은 1만 8000명에 달했다. 포경산업은 해마다 400만 달러를 소비했다. 출항할 때 2000만 달러의 가치를 갖는 배가 해마다 700만 달러의 수익을 가지고 돌아왔다. 포경선은 귀향까지 길면 3년씩이나 걸렸다.
이렇게 거대한 산업에는 많은 사람의 투자가 필요하다. 피쿼드호도 직접 투자를 한 사람을 비롯 연금생활을 하는 사람들, 고래잡이 남편을 잃은 과부들,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미성년자로 법원의 보호를 받는 피후견인 등이 지분을 나눠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수익을 주는 국채에 투자하듯 낸터킷 사람들은 포경선에 투자했다.
비단 포경산업 뿐 아니다. 앞선 대항해시대 향신료와 금은을 얻기 위해 떠나는 선박들은 대형 투자가 필요했다. 공적기관은 없었다. 온전히 민간에서 투자금을 모아야 했다. 투자를 한 대가로 주식과 채권이 발행됐다. 그러니까 주식과 채권은 대항해시대 탄생한 유물이다.
민간시장의 위기를 막는 공적 선박금융, 캠코선박펀드
해운 관련 산업은 지금도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한 사업이다. 해운회사는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하거나 회사채를 발행한다. 혹은 사모펀드에 손을 벌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때는 민간시장에서 자금을 모으기 힘들다.
캠코선박펀드는 이처럼 민간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투입되는 공적 선박금융이다. 한진해운이 파산하는 등 국내 해운업이 위기에 몰리자 정부는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과 해운재건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국내 해운사 지원에 나섰다.
캠코는 선박펀드를 조성해 19개 해운사가 내놓은 78척을 인수했다. 캠코선박펀드는 해운사가 자금난으로 내어놓은 선박을 시중가로 매입한 뒤 이 선박을 해운사에게 재대여해줬다. 이른바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 back)’ 제도다. 긴급 자금이 필요했던 해운사들은 캠코선박펀드로부터 돈을 받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고, 정부는 해외에 선박이 헐값으로 팔려가는 것을 막은 뒤 향후 해운경기가 좋아지면 해운사들에게 선박을 재매각할 수 있다.
캠코선박펀드는 이처럼 민간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투입되는 공적 선박금융이다. 한진해운이 파산하는 등 국내 해운업이 위기에 몰리자 정부는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과 해운재건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국내 해운사 지원에 나섰다.
캠코는 선박펀드를 조성해 19개 해운사가 내놓은 78척을 인수했다. 캠코선박펀드는 해운사가 자금난으로 내어놓은 선박을 시중가로 매입한 뒤 이 선박을 해운사에게 재대여해줬다. 이른바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 back)’ 제도다. 긴급 자금이 필요했던 해운사들은 캠코선박펀드로부터 돈을 받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고, 정부는 해외에 선박이 헐값으로 팔려가는 것을 막은 뒤 향후 해운경기가 좋아지면 해운사들에게 선박을 재매각할 수 있다.
캠코의 유동성 지원을 받은 해운사들은 지금…
캠코는 또 3개 해운사가 12척의 배를 신규건조하는 데도 349억 원을 투자했다. 해운업 경기가 나쁠 때면 은행이나 사모펀드 등 금융권은 좀처럼 선박건조에 투자하지 않는다. 단기간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박건조는 미래를 내다보며 하는 투자다. 해운경기가 회복이 되었을 때 선박이 없다면 재기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럴 때는 투자금 회수를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 공적 선박금융이 필요하다.
캠코가 있었다면 피쿼드호도 무리한 운항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선장은 민간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수익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향유고래를 반드시 잡아야 했다. 만약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다음 출항을 기약할 수 없었다. 이는 선장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캠코의 유동성 지원을 받은 해운사들은 구조조정을 하면서 해운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춘 지금, 해운산업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주가도 급등하고 있다. 선박이 없어서 수출 화물을 못 싣는다는 아우성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어려웠던 3년 전 해운사들이 돈이 급해 선박들을 헐값에 팔아버렸더라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캠코가 있었다면 피쿼드호도 무리한 운항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선장은 민간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수익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향유고래를 반드시 잡아야 했다. 만약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다음 출항을 기약할 수 없었다. 이는 선장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캠코의 유동성 지원을 받은 해운사들은 구조조정을 하면서 해운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춘 지금, 해운산업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주가도 급등하고 있다. 선박이 없어서 수출 화물을 못 싣는다는 아우성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어려웠던 3년 전 해운사들이 돈이 급해 선박들을 헐값에 팔아버렸더라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스타벅스가 모비딕에서 유래됐다고?
<모비딕>에는 많은 인물이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이다. 눈치챘겠지만 커피전문점 ‘스타벅스(Starbucks)’가 여기서 유래됐다.
소설 출간 130년 뒤인 1971년, 두 명의 교사와 한 명의 작가가 항구도시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에 자그마한 커피전문점을 열면서 상호를 ‘스타벅스(Starbucks)’로 붙였다. ‘스타벅스’의 이전 이름은 ‘피쿼드 커피’였다고 한다. 한 편의 고전은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타벅은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에 대립하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나이는 30세. ‘큰 키에 성실하고, 근육이 두 번이나 구운 비스켓처럼 단단해서 열대지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체격을 가진 사내’로 묘사된다. 양심적이고, 자연에 경외감을 갖고 있으며 젊은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는 가정적인 사람이다.
‘스타벅스’ 상호가 일등항해사 스타벅에서 나온 것은 맞지만 스타벅이 커피를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소설을 읽어봐도 스타벅이 커피를 마셨다는 얘기는 없다. 스타벅스는 여신 사이렌을 자사의 로고로 정하고, 상호를 ‘스타벅스’로 정한 것에 대해 “초기 커피 무역상들의 항해 전통과 열정 그리고 로맨스를 연상시키고자 했다”고 자사 홈페이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스타벅은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에 대립하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나이는 30세. ‘큰 키에 성실하고, 근육이 두 번이나 구운 비스켓처럼 단단해서 열대지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체격을 가진 사내’로 묘사된다. 양심적이고, 자연에 경외감을 갖고 있으며 젊은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는 가정적인 사람이다.
‘스타벅스’ 상호가 일등항해사 스타벅에서 나온 것은 맞지만 스타벅이 커피를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소설을 읽어봐도 스타벅이 커피를 마셨다는 얘기는 없다. 스타벅스는 여신 사이렌을 자사의 로고로 정하고, 상호를 ‘스타벅스’로 정한 것에 대해 “초기 커피 무역상들의 항해 전통과 열정 그리고 로맨스를 연상시키고자 했다”고 자사 홈페이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글.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
경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기 위해 영화, 문학, 대중문화와 경제학을 접목하는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저서로 <경제학자의 문학살롱>, <영화 속 경제학>, <아이언맨 수트는 얼마에 살 수 있을까?>, <경제를 모르는 그대에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