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함께 한 10년, 더 큰 내일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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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뮤지엄
고정관념을 탈피해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 - 불교의 포용력
인문학·문화 | 서광스님

30여년 전, 불교계에서는 현실을 떠난 깨달음의 추구나 중생의 아픔을 외면한
수행풍토의 문제점에 대해 반성과 대안을 모색하는 각종의 세미나, 토론회가 열렸었다. 이는 불교가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대중의 요구와 필요에 좀 더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실천불교, 사회참여불교를 위해 산중불교, 출가 수행자중심 불교에서 도시 불교, 일반인, 젊은이와 함께 수행하는 불교로 거듭나야 한다는 자기성찰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어느덧 30~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스님들은 불교의 핵심가치인 요익중생饒益衆生(중생을 이롭게 하다)과 이고득락離苦得樂(고통을 떠나 즐거움을 얻다)을 실현하기 위해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방법들을 앞세워 산중이 아닌 도시에 사찰들을 세우기 시작했고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도 포교당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전통수행 대신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스님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전공도 다양해지기 시작했고, 소위 해외파도 생겨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불교의 유형·무형의 자산들을 기반으로 한 템플스테이, 연등축제, 사찰음식, 국제불교박람회, K-명상, 산사음악회 등의 이름으로 K-문화의 글로벌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불교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올 2024년에 <재미있는 불교>라는 주제로 AI붓다의 고민상담소를 위시해서 챗GPT, VR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MZ세대들을 위한 다채로운 체험형 수행문화를 소개함으로서 2030세대들의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거기에 더해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의 디제잉은 ‘클럽보다 힙하다’며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
해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다채로운 불교행사와 굿즈들은 기존의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제도권 종교의 틀을 깨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즐거운, 창의적인, 발랄한, 위로받는, 따뜻한, 기발한, 건강한, 다양한, 평등한,...등의 감각과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일찍부터 학업과 성적, 비교와 생존경쟁에 시달려 가슴 한 켠에서 짓눌려진 젊은이들의 열정과 잠재력을 터치해주고 일깨워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분위기 속에 함께 존재하고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겪는 학력, 성적, 취업, 지위, 연봉, 금수저, 흙수저,...등의 서열과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만난 불교명상, 음악, 미술품들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그들 자신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주었고,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되기를 강요하지 않았고,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었다.

다음은 불교의 마음공부, 마음수행의 핵심, 특징을 말해주는 문구 중 하나다.

불교는 자기를 공부하는 것이다.
자기를 공부하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자기를 잊는 것은 만물과 친해지는 것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불교명상은 바로 자기를 공부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고, 자기중심적인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고 만물과 친해지는 방법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자기에 대해 공부하는 것과 자기를 공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비교를 통해 우열과 옳고 그름을 시비하고 판단하며, 자아에 대한 관념, 편견, 생각의 틀을 짜는 세계지만, 후자는 존재의 근원, 주객 이원을 초월한 직관, 통찰의 세계다. 전자는 중생의 마음을 흔드는 여덟 가지 바람(물질적 이익과 손해, 칭찬과 비방, 명성과 악평, 즐거운 자극과 불쾌한 자극)에 의해 고락의 감정과 생각의 파도가 요동치는 중생들의 마음의 세계다. 후자는 불교명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러한 생각과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매몰되지 않고, 괴로움을 유발하는 생각과 감정의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는 일종의 마음바다를 타는 서핑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삶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힘겨운 감정과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그것을 다루는 역량과 기술을 배울 수는 있다. 불교는 바로 명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삶의 기술을 가르치고, 나아가 바로 그 고통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인생의 진리, 교훈을 깨닫도록 돕는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나 국제연등축제가 왜 그토록 젊은이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었는지 더러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곳에는 평등, 다양성, 자유로움, 유머가 녹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의 실천윤리, 계율, 도덕은 인간만이 아니라 일체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금지하고, 반대로 일체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증장하는 요소들을 적극 발현시키고 실천하는 덕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가 지향하는 가치, 즉 이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만물의 평등, 상생, 연기적 존재방식이 자본과 물질을 비교하고 우열을 셈하는 에고의 작동을 잠시 잠깐 멈추게 해 준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불교의 문화, 예술, 교육은 자유로움과 절도가 한데 버무려져, 일체중생을 기쁘게 하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 해탈, 열반의 저 언덕으로 안내하는 몸짓과 소리들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혼자 남겨져서 단절되고 소외될까 두려워서, 숨차게 달려가는 삶이 너무 벅차서, 힘들다는 감각조차 무디어져 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삶은 소유가 아니라 무상(無常, 덧없이 변화함)을 타고 흐르는 경험임을 일깨워주는 불교의 부단한 손짓에 드디어 그들이 화답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제는 전생 일처럼 아득해졌지만 나 역시 막막하고 암울했던 젊은 날에 불교를 만나 경쟁하고 비교하는 고락의 쳇바퀴에서 내려와, 그저 내가 서 있는 이곳, 내가 존재하는 지금-여기에서 순간순간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들을 즐기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최근에 그들이 경험한 힙한 불교, 재미있는 불교는 약으로 치면 일시적으로 고통을 진정시켜주는 진통제에 해당하고 음식에 비유하면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이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게 될 삶의 괴로움을 치료해 줄 진짜 치료제, 메인디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디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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