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필독서인 걸리버 여행기.
총 4부로 이뤄진 대서사시에는 사실 18세기 영국 조세정책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숨어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체납조세관리는 캠코의 온비드 공매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데요.
걸리버 여행기와 세금정책들. 한번 알아볼까요?

글.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

아이들의 필독서인 걸리 버여행기.
총 4부로 이뤄진 대서사시에는 사실 18세기 영국 조세정책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숨어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체납조세관리는 캠코의 온비드 공매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데요. 걸리버 여행기와 세금정책들. 한번 알아볼까요?

글.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

우리가 알고있는 걸리버여행기는 절반이라구?

우리가 알고있는
걸리버여행기는 절반이라구?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날까. 아마도 소인국의 나라와 대인국 나라가 떠오를 것이다. 걸리버는 영국으로 돌아가지만 좀이 쑤셔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떠난 곳이 ‘라퓨타’와 ‘말의 나라’. 하지만 걸리버의 이 두 방문지를 기억하는 한국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래도 당신 잘못은 아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처음으로 번역한 이는 최남선이다. 그는 1908년 청소년 잡지인 ‘소년’ 창간호에 <걸리버 여행기>를 소개하면서 소인국과 대인국만 실었다. 그리고 1992년 완역본이 나오기까지 70여년간 <걸리버 여행기>는 국내에서 아동용 동화가 됐다.

풍자와 비판이 숨어있는
걸리버 여행기의 속이야기

풍자와 비판이 숨어있는
걸리버 여행기의 속이야기

왕은 영국의 재정에 관해서도 물었다. 영국의 재정수입이 연간 500만 파운드에서 600만 파운드 정도된다고 하더니 지출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그 배는 되는 것으로 얘기하는데, 따라서 나의 계산이 엉터리가 아닌가하고 이의를 다는 것이었다. 왕은 영국국가의 채권자는 누구며 그에 갚을 돈을 어떻게 구하는 지를 물었다. 왕은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전쟁에 관한 얘기를 듣고는 크게 노하면서 그것이 사실이라면 영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전쟁을 좋아하는 아주 고약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했다.


대인국의 왕과 걸리버의 대화다. 어린이가 읽기에 적합한 동화가 맞을까? <걸리버 여행기>는 사회비판적인 성인용 풍자소설이다. 아니 풍자를 넘어서 금서에 가까운 불경한 책이었다. 저자인 조나단 스위프트는 심프슨이라는 가명으로 책을 썼고, 출판업자는 원고에 마구 칼질을 해댔다. 선동죄로 붙잡혀갈 것을 우려한 탓이다.

소설가이자 성직자였던 작가,
실랄한 비판으로 영국시민들에게
통쾌함 선사하다

소설가이자 성직자였던 작가,
실랄한 비판으로 영국시민들에게
통쾌함 선사하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소설가이자 성직자였다. 당시 정치계의 거물이었던 템플경 밑에서 비서생활을 하면서 정치에 대한 꿈도 키웠다. 영국의 식민지 아일랜드 출신인 스위프트는 영국 정부의 식민지 정책을 반대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출판했던 <드레피어의 편지>(1724)는 아일랜드를 착취하는 영국통화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영국 정부는 필자를 잡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었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영국인과 영국사회에 대한 실랄한 비판이 담겨있다. 말의 나라에서 걸리버는 영국총리를 ‘재산이나 권력이나 벼슬에 관한 강한 욕망 이외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존재’로 표현한다.
영국 남자는 무절제한 낭비, 여성은 허영심에 가득 찬 존재라고 했다. 그럼에도 <걸리버 여행기>는 출간과 함께 영국사회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첫 인쇄본이 일주일 만에 다 팔렸다. 왕과 귀족에게 말을 하고 싶어도 감히 하지 못하던 서슬퍼런 시대, 걸리버 여행기는 서민들에게 통쾌함을 줬다.

걸리버 여행기, 다시 보다

걸리버 여행기, 다시 보다

<걸리버 여행기>는 전체 4부다. 1부는 소인국의 나라, 2부는 거인국의 나라, 3부는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 4부는 말의 나라다.
각 여행기는 제각기 다른 교훈을 준다. 1부 소인국은 걸리버의 12분의 1 크기인 릴리프트인들이 산다. 소인국 여행기에서는 소인국 두 나라 이외의 세상은 생각하지 않는, 편협하고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질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2부 거인국은 걸리버보다 12배 큰 인간들이 사는 나라, 브로브딩낙이다. 제도나 학문의 발달이 영국보다 뒤떨어졌으면서도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는, 역시 편협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묘사한다.
3부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에서는 추상적이고 공상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 과학만능주의의 한계를 절절히 깨닫는다. 4부 말의 나라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꼬집는다. ‘모든 짐승 중 가장 교육할 수 없는 동물’이 인간이라며 ‘인간은 이상적’이라는 자부심을 깬다.

걸리버 여행기로 돌아보는
세금이야기

걸리버 여행기로 돌아보는
세금이야기

조나단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의 많은 부분을 세금이야기에 할애했다. 당시 서민들을 괴롭혔던 영국의 조세정책를 꼬집기 위해서였다. 국왕이 존재하고, 광대한 식민지를 운영해야 했던 대영제국은 세금이 과했다.
소인국 릴리프트는 걸리버로 인해 재정적 위기에 빠진다. 걸리버는 소인국 릴리프트의 국민 1728명분의 식량과 음료를 매일 지급받았다. 매일 소 여섯마리와 양 40마리, 그리고 엄청난 양의 빵과 포도주다. 300명의 주방장이 이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고 20명의 웨이터가 날랐다. 셔츠를 만드는데 200명의 여성, 300명의 재봉사가 동원됐다.
황제는 국민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자신의 금고에서 비용을 지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소인국의 재정전문 교수들은 세금을 거두는 가장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방법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한쪽은 악행과 어리석은 행위에 대해 ‘죄악세’를 걷자고 주장했다. 반대쪽은 개인의 우수성에 따라 담세력이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걷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론 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쪽이든 국민의 저항을 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장관은 마침내 “걸리버로 인해 국가재정이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며 왕에게 “걸리버를 죽이자”고 건의한다.

세금제국이였던 18세기 영국,
지금은?

세금제국이였던 18세기 영국,
지금은?

영국은 세금으로 흥했고, 세금으로 망했다. 근대 영국헌법의 기초가 된 마그나카르타는 존 왕의 세금정책에 귀족들이 저항하면서 시작됐다. 3가지 이상의 세금은 부과하지 않을 것과 세금징수를 위해서 의회가 개최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프랑스, 스페인과 싸워야 했던 영국은 많은 전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재산세, 관세, 선박세 등을 물렸다. 스위프트가 살았던 1600년대 후반~1700년대 초반에는 가정의 화로숫자와 창문의 숫자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화로세와 창문세까지 있었다.
세금징수는 흔히 거위의 털을 아프지 않게 뽑는 것에 비유된다. 현대 정부는 18세기 영국과 달리 몇가지 과세 원칙을 정해놓고 있다. 경제학에서 보는 조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평성이다. 공평성이 무너지면 조세저항이 일어난다. 세금을 내지않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공평성에는 ‘편익원칙’과 ‘능력원칙’이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재와 서비스를 통해 얻어지는 편익만큼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이 ‘편익원칙‘이다. ‘능력원칙’은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따라 부자가 세금을 더내야하는 이론이 정착됐다. 고소득층의 경우 공공재를 이용할 가능성이 더 크고,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온비드, 공매를 통해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온비드, 공매를 통해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제때 세금을 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세금을 체납하게 된다. 세금을 체납하면 가산세가 부과되고 체납자의 재산이 압류된다. 그러고도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국세징수법에 따라 공매 등을 통해 압류재산을 처분하게 된다.(공매란 국가가 진행하는 경매를 말한다)  국세징수법 제61조에 따라 공매업무를 대행하는 곳이 한국자산관리공사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공매포털시스템 ‘온비드’를 통해 공개입찰방식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매를 진행한다. 공매되는 자산은 비단 체납자산 뿐 아니다. 국유재산, 수탁재산, 공공기관 자산들도 온비드를 이용해 대중에 매각된다. 공매대상 자산은 동산, 부동산, 유가증권, 무체재산권(지식재산권) 등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 최근에는 김포시가 지하철 9개 역의 이름을 상품에 쓸 (역명부기) 권리를 공매 입찰에 붙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온비드의 장점은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은 저렴한 비용으로 공정하게 자산을 처분한 뒤 재정수입을 확보하고, 국민들은 다양한 물건을 온라인에서 편리하게 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1726년 출간했을때 그의 나이는 59세였다. 정치인 비서, 영국 국교회의 사제 등을 두루 겪은 뒤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경험을 집대성해 펴냈다. 그런 만큼 <걸리버 여행기>에는 18세기초 영국의 민낯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록물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집콕’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때, <걸리버 여행기>를 완독하며 18세기의 영국을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

글.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
경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기 위해 영화, 문학, 대중문화와 경제학을 접목하는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저서로 <경제학자의 문학살롱>, <영화 속 경제학>, <아이언맨 수트는 얼마에 살 수 있을까?>, <경제를 모르는 그대에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