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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조선업계가 본격적인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전 세계 선박 수주는 6,033만 CGT(2,159척)에 달해 전년도 같은 기간 4,451만 CGT(2,057척) 대비 36% 증가했다.올해는 2008년 이후 가장 활발한 선박 수주를 기록할 해로 전망된다. 선박 가격의 주요 지표인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189.19를 기록하며 전년 동월 대비 7% 상승했다. 이 지수는 2020년 11월 이후 4년 이상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조선산업의 호황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후 선박 교체 시기가 도래한 데다,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리스크 증가로 해상 운임이 급등한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대형 유조선(VLCC), LNG 운반선, 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요도 크게 늘었다. 여기에 탄소 배출 규제 강화로 인해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 수요가 급증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 새로 발주된 선박 물량의 절반 이상이 친환경 연료 선박이라는 점은 이러한 추세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슈퍼사이클의 수혜를 한국이 실질적으로 잘 누리고 있다. 11월까지 한국은 1,092만 CGT(248척)를 수주하며 전년 동기 대비 1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의 62% 증가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증가 덕분에 한국 조선 3사의 수주 잔량은 이미 3년치를 초과했다. 여기에 선가 상승과 최근 원화 약세가 더해져 한국 조선사들의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높은 품질과 LNG 운반선에 특화된 기술력에서 비롯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LNG 해상 운송 수요가 급증하면서 LNG 운반선의 수요가 크게 늘었고, 한국은 이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 연료 분야에서도 기술적 진입 장벽이 높은 LNG와 암모니아 선박에 특화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올해 한국은 수주 점유율에서 중국에 다소 밀렸으나, 척당 환산 톤수 기준으로는 한국이 5.6만 CGT, 중국이 2.6만 CGT로, 대형 선박 위주의 수주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다.
올해 한국의 선박 생산량은 전년 대비 17% 증가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 2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선박은 수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 말부터 증가한 수주 물량의 해외 인도가 본격화되면서 올해 선박 수출액은 전년 대비 7% 증가한 23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와 자동차 외에 뚜렷한 수출 주력 품목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박 산업은 다시금 주요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한국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2025년 글로벌 조선업 전망은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혼재돼 있다.신조선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클락슨 선가지수가 9월 정점을 찍고 소폭 하락했으나, 이는 주로 벌크선과 탱커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저가 수주가 원인이다. 내년에도 신조선가는 올해와 비슷한 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미 LNG 액화 프로젝트가 최종 확정되면 LNG 운반선 신규 발주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LNG 운반선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조선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탄소배출 규제 강화 역시 한국 조선업계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해운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3%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선박 탄소배출을 10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선사들은 2030년까지 배출량을 30%, 2040년까지는 70% 이상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탄소 저감 기술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선박 건조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 이와 관련된 새로운 시장 진출 기회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미국 정부가 한국 조선사에 군함 유지·정비(MRO) 사업을 맡기는 것도 한국 조선업계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정적 요인으로는 내년 글로벌 신규 발주량이 올해 대비 약 20%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대량으로 발주된 선박의 인도가 본격화되면서 선복 과잉 우려가 커지고, 이에 따라 해상 운임 하락 전망이 신규 발주 의지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조선업계가 직면한 리스크도 적지 않다. 특히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과 물량 공세는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중소 조선사를 합병하고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생산 능력에서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중국 조선사의 대형화는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연구개발(R&D)을 가속화하며 기술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에서는 중국 정부와 한국 조선기업 간 경쟁 구도를 두고 "국가 대 기업"이라는 비유까지 나오고 있다.
글로벌 수주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021년 37%에서 지난해 24%로 하락한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49%에서 60%로 상승하며 시장에서의 우위를 확대하고 있다.특히 LNG 운반선 부문에서도 한국의 점유율은 2021년 87%에서 2024년 1~3분기 60%로 감소해 경쟁력 약화가 드러나고 있다.
인력 부족 문제 역시 심각하다. 과거 건설업 등으로 이탈한 생산 인력이 복귀하지 않으면서 2027년까지 약 1.3만 명의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 이는 생산 지연과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외국인 인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숙련도 부족 문제가 여전히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이렇듯 중국과의 경쟁 구도와 각종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 2025년 한국 조선업계는 선박 종류를 다양화하고, 납기 준수와 고객 신뢰 구축 등 비가격 경쟁력을 강화해 차별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설계와 건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디지털 시뮬레이션 기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또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기업, 연구기관이 협력하는 ‘원팀’ 전략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기술 개발, 인프라 확충, 그리고 정책 지원을 하나로 묶어 한국 조선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해야 나가야할 것이다.
Columnist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및
공급망분석실 실장
1992년 한국무역협회에 입사해 30년 이상 경제 및 무역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으며, 2025년부터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을 맡고있다. 2019년부터 3년간 워싱턴D.C. 한국무역협회 지부장으로 근무하며 대미 민간 통상외교를 담당하고, 대미 무역증진에 힘썼다. 산업부, 기재부, 중기벤처부 등 다양한 정부 위원회에서 정책자문을 수행했으며, 대통령 표창(2003년)과 국무총리 표창(2023년)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