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을 것 같았던 무더위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는 못한다. 선선한 바람이 성큼 다가온 가을. 트렌치코트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부산의 숨겨진 장소에서 가을의 색을 만났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무더위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는 못한다. 선선한 바람이 성큼 다가온 가을. 트렌치코트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부산의 숨겨진 장소에서 가을의 색을 만났다.

바다에서 만난
이국적 풍경 죽성성당

바다에서 만난
이국적 풍경
죽성성당

2009년 방영된 SBS 드라마 <드림>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죽성성당은 실제 성당이 아닌 드라마 세트장이다. 외진 바닷가에 덩그러니 위치해있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기 있는 데이트 코스로 손에 꼽히는 이유는 ‘인생 컷 한 장’을 건질 수 있는 이곳만의 풍경 때문이다. 고즈넉한 마을에 고딕 양식의 빨간 첨탑과 주황색 지붕 그리고 회색 벽돌과 흰색 벽 건물이 이루는 이국적인 풍경은 유럽의 어느 해안가 마을같이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 조금 부지런히 몸을 깨워 새벽녘 일출 속으로 달려 들어가 보라. 특별한 테크닉이 없어도 멋진 인생 컷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죽성성당에서 송정해수욕장까지 이어진 해안도로의 먹거리와 볼거리는 덤이다.


성당 안은 원래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으나 리모델링을 하면서 갤러리로 변신했다. 갤러리에서는 다양한 테마의 전시가 2주 간격으로 진행된다. 주로 기장군 소속의 단체나 개인 작가 위주로 전시가 이뤄지고, 모든 전시가 무료다.

부산은 동해와 남해를 동시에 접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해수욕장마다 특색이 다양하다. 죽성에서 송정까지의 바다가 깊고 푸르며 바다가 높은 편이라면, 송도와 다대포의 바다는 밀물과 썰물이 확연히 드러나는 변화무쌍의 장소다.
죽성에서 일출을 보았다면 다대포에서는 낙조를 관망해보자. 타들어갈 듯한 낙조로 유명한 다대포는 낙동강의 토사로 만들어진 넓은 백사장 위로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참방참방 남아 하늘의 붉고 노란 울부짖음을 그대로 투영한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바다인지를 모를 노을에서 황홀경은 당연지사다.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는 부산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음악 분수다. 4월부터 10월까지 운영되는데, 음악에 맞춰 물줄기가 춤을 춘다. 찬란한 조명과 어우러지면 라스베거스 벨라지오 분수쇼에 버금가는 멋진 공연이 펼쳐진다. 면적 7,731㎡, 원형지름 60m, 둘레 180m, 분수바닥 면적 2,519㎡, 최대 물높이 55m로 세계 최대 기록도 가지고 있다.

태양을 닮은 낙조
다대포해수욕장

태양을 닮은 낙조
다대포해수욕장




핑크뮬리가 빚은
대저생태공원

핑크뮬리가 빚은
대저생태공원

가을이 되면 분홍빛 물결 속에서 찍은 ‘힙한’ 사진들이 SNS에 소개된다.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것만 같은 ‘핑크빛 식물’ 핑크뮬리의 향연이다. 최근 몇 년간 핑크뮬리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전국 각지에서 씨앗을 뿌리고 있는데, 그마저도 씨앗이 없어 못 심을 정도라고 한다. ‘분홍쥐꼬리새’ 또는 ‘서양 억새’라고도 불리는 핑크뮬리는 그간 경주나 순천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부산에서도 그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2017년 대저생태공원 2번 주차장 근처와 을숙도철새공원 피크닉광장 등 약 8,000㎡에 심은 핑크뮬리가 군락을 이뤘기 때문. 10월이 되면 60~80㎝까지 자라 핑크빛 물결이 절정을 이룬다.


이국적인 핑크뮬리를 봤다면 이번에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 코스모스 군락지로 가보자. 대저생태공원에서 다리만 건너면 된다. 삼락생태공원은 부산 최대의 코스모스단지로 매년 가을꽃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기장 불광산(659m) 자락에 있는 장안사는 굽이진 산세와 계곡으로 유명하다. 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는데 커다란 은행나무와 특이한 단풍나무가 절 안팎을 감싸고 있어 가을에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안사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고색창연한 대웅전은 부산시 기념물이자 보물로 지정된 건물로 석가여래 삼존불과 후불탱화, 신중탱화 등이 봉안돼 있다. 대웅전 앞에는 인도 등에서 3차례에 걸쳐 들여온 석가의 진신사리 7기를 모신 3층 석탑도 있다. 장안사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극락전이다. 여기에는 와불(누워 있는 불상)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
장내를 나와 절터 뒤쪽으로 가면 대나무숲 길로 이어진다. 빽빽이 들어찬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걷노라면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산책로를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척판암’이 나온다. 척판암에서 수도하던 원효대사가 명상 중에 무너져 내리는 당나라 태화사(泰和寺)를 보고 이를 구하기 위해 ‘효척판이구중(曉擲板而救衆 : 신라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사람을 구한다)’이라고 쓴 큰 판자를 날려 보내 천 명의 승려들을 구했다는 설화가 전해오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장안사에는 무림의 고수가 거할 것 같은 비장함도 느껴진다.


장안사에는 보물 제1771호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있다.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는 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85호,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은 제86호,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는 제87호, 응진전 ‘석가영산회상도’는 제88호, 명부전 ‘지장보살도’는 제89호로 지정돼 있다. 또 제94호(장안사 대웅전 석조삼세불좌상), 제106호(장안사 명부전), 제107호(장안사 응진전)와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장안사 연)가 있다. 천년고찰이라는 명성만큼이나 많은 문화재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무림고수가 거할
것 같은 기장 장안사

무림고수가 거할
것 같은 기장
장안사

글. 차은호 사진. | 김재수, 누리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