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공공자산 처분시스템 ‘온비드’는 서비스 개시 15년 만에 누적 거래금액 65조 원, 입찰참가자 157만 명을 돌파하며 꾸준한 관심과 성원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매가 어렵게만 느껴지는 국민들을 위해 온비드로 자산관리에 성공한 이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비법을 소개합니다!
온라인 공공자산 처분시스템 ‘온비드’는 서비스 개시 15년 만에 누적 거래금액 65조 원, 입찰참가자 157만 명을 돌파하며 꾸준한 관심과 성원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매가 어렵게만 느껴지는 국민들을 위해 온비드로 자산관리에 성공한 이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비법을 소개합니다!
내 집을 갖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내 집을 갖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1년 전 대학에 갓 입학한 아들이 나에게 꿈을 물어왔다. 아들이야 나름 아버지의 버킷리스트가 궁금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마흔을 넘긴 후로 내 꿈은 줄곧 내 집을 갖는 것이었다.
이십 대 초반, 나는 가장이라는 절대적 사명 아래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 세월의 끝자락에서 나의 시험 합격과 함께 울릉도라는 낯선 곳에서 우리 가족의 새로운 생활은 시작되었다. 10평 남짓한 울릉도 사택은 4인 가족이 살기에는 턱없이 좁았지만 우리 부부도 꿈을 꿀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을…. 울릉도의 긴 겨울을 다섯 번째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집사람은 처음으로 그 꿈을 현실로 끌고 들어왔다.
“진이 아빠! 진이도 이제 중학교 2학년인데 고등학교는 육지로 가야 하지 않을까… 철이도 그렇고…….”
“그렇지. 고등학교는 육지에 보내야지. 그래도 진이 엄마. 우리 조금만 더 모아서 집 사서 나가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지만 ‘조금만 더 모아서 집을 사자’는 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 걸 나도 집사람도 이미 그때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집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랐고 우리가 100만 원을 저축하면 집값 또한 100만 원이 올랐다. 그게 현실이었다.
희망의 사다리는 바로 온비드에 있었다
희망의 사다리는 바로 온비드에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공매로 눈을 돌렸다.
법원 경매와 달리 온비드 공매는 주로 공공기관의 부동산이 공매로 올라오기 때문에 법원 경매 부동산이 가지는 복잡한 개인 사연이나 이권 분쟁이 없었다. 또한 공인인증서 하나만으로 인터넷을 통해 참여할 수 있는 편리한 접근성은 딱 나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2011년 6월 기다리던 물건이 온비드에 올라왔다. 울릉도 북면에 위치한 대지 50평의 사택이었다. 낙찰 후 처음으로 그 집과 대면한 날, 집사람은 오래된 지붕과 잡초 무성한 작은 마당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는 실망한 집사람의 귀에 입을 가까이하며 말했다.
“여보, 지켜봐. 이 집은 반드시 우리 가정의 사다리가 될 거야! 우리 집으로 가는 희망의 사다리 말이야.”
그리고 그 해 10월 울릉읍 저동리와 북면 천부리를 잇는 4.75km 구간의 울릉 일주도로 건설공사가 착공된다는 뉴스가 신문지면을 통해 흘러나왔다. 우리가 그 집을 낙찰받은 그 이듬해에 딸은 경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며, 아들 또한 1년 후 육지로 떠났다. 그리고 2년 뒤 섬에서의 열 번째 겨울이 깊어가는 12월 우리는 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내리는 소금꽃 같은 눈을 뒤로하고 섬을 떠났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울릉도를 떠난 후에도 초지를 찾아 광야를 헤매는 유목민처럼 3년여를 더 떠돌아다닌 후에야 다시금 한집에 모여 살 수 있었다. Y군의 10평 사택 그리고 K시에서 17평 남짓한 방 두 칸짜리 월세를 거쳐 C군의 현재 살고 있는 21평의 반 전세까지.
희망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니, 내 집이 보였다
희망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니, 내 집이 보였다
그렇게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 동안 울릉도에 있는 우리 집 희망의 사다리는 어느덧 3배나 올라있었다. 그리고 올해 4월 나는 꿈에 그리던 신축 아파트 분양 계약을 했다. 아이들 각자에게 방 하나씩 내줘도 우리 부부의 침실과 넉넉한 거실이 있는 33평의 아파트였다. 아직 입주가 2년이나 남은 아파트 분양계약서를 보며 집사람은 뜨거워진 눈시울로 나에게 말했다.
“여보, 이거 우리 집 맞지?”
나는 어깨를 토닥이며 웃으며 대꾸했다.
“아직은 아닌데…, 2019년 4월이 되어야 우리 집이지.”
만약 온비드 공매가 없었다면 내 꿈은 필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대한민국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처럼 너무나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시민들에게 권하고 싶다. 삶이 여름 땡볕같이 더운 입김을 요구하는 지금, 어쩌면 넓은 그늘이 있을지 모를 온비드에서 희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이다. 기회는 그냥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찾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자의 것이라고 말과 함께.